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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CE/2013

프랑스에서 만난 진짜 친구

by octobre 2013. 12. 1.


프랑스에서 귀국한지도 거진 한달이 다 되어간다. 시차적응 하고 오랜만에 친구들 만나고, 그리웠던 한국음식도 많이 먹고... 그와중에 토익도 보고 그러다 보니 한달 정말 금세 간다. 프랑스에서 경험했던 모든 일들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었고, 만났던 모든 사람들은 정말... 어떻게 그렇게 좋은 사람들을 이렇게나 많이 만날 수 있는지 신기할 뿐이다. 

2012년 말, 친구들과 조용한 찻집에 모여 각자 2013년에 이룰 소망을 한가지씩 말하는 시간을 가졌다. 내 소망은 "집순이 탈출". 집에 있는걸 너무 좋아하고 그게 별로 문제될게 없다는 주의인데, 이제 곧 환경이 변하고 사실 거기에서까지 집안에만 있을거면 굳이 외국에서 공부할 필요가 없으므로 나름 고민하고 결정한 것이었다. 출국하기 전날 나 자신에게 굳게 다짐했었다. 마음의 문을 열 것. 적극적으로 친구들을 많이 사귈 것. 다양한 경험을 하고 돌아올 것. 

 

# 안나와 로라

처음부터 운이 좋았던 것 같다. 2월 초 프랑스에 도착하고 3일후가 개강일, 테스트를 거쳐 반이 배정되었다. 불어가 빨리 늘고 싶었기에 내심 반에 한국인이 없길 바랐다. 그런데 막상 첫날 가보니 어학원 사방에 한국인 천지라 일찌감치 기대를 접었다. 조금 일찍 반에 도착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반친구들을 기다렸다. 긴장되었다. 그때 옆에 어떤 여자애가 앉았다. 인상이 좋아보였다. 예전의 나 같았으면 낯가린다 뭐다해서 눈을 피했겠지만 여기서만큼은 그러지 않기로 결심했으므로 용기내어 말을 걸려고 했다. 하지만 문제는 내 실력이 실력인지라 기본적인 대화조차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고, 말문이 막혔다. 그래서 대충 단어의 조합으로 말을 걸었는데 걔도 잘하는게 아니라서(모두 기초반) 걔는 내 말을 못알아듣고 나도 걔가 한말을 못알아듣고 그렇게 황당한 대화가 끝났다. 그래도 서로 낄낄대며 이름과 국적을 주고 받았다. 안나, 멕시코 여자애였다. 이 아이는 곧 내 절친 중 한명이 되고, 7월에 멕시코로 돌아가기 전까지 프랑스에서 잊을 수 없는 추억들을 대부분 함께 했다. 그리고 또다른 절친, 그 당시 안나 앞에 앉았던 콜롬비아 친구인 로라도 이때 처음 만나게 되었다. 몇명이 더 오고, 수업이 시작되었는데, 아무래도 애들이 너무 적은거다. 출석을 부를때보니 중동쪽 남자들이 아직 아무도 오지 않았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걔네들은 오후에 나오거나 그냥 수업에 나오지 않는다. 국가에서 돈을 많이 지원해주기 때문인지 원래 돈이 많아서인지 뭐 그 둘다인지 공부하려는 의욕이 별로 없다. 그때 우리반에 중동 남자애들이 한 7명 됐는데 나오는 애들은 3명도 안되고 걔네들도 오후 1시 넘어서 가끔 왔었다. (수업은 9시에 시작) 어쨌든 출석동안 유심히 들으니 반에 한국인이 나혼자 였다. 너무 신기하고 이상했다. 그 많은 한국인들은 다 무슨 반에 배치된 거지. 그래도 바라던대로 되어서 좋았다. 중동 남자애들이 아직 아무도 안왔으니 우리반에는 모두 여자뿐이었다. 소수정예 온리 여자들. 본격적인 수업시간이 되었다. 다들 못하는데 정말 적극적이었다. 외국애들은 공부에서 만큼은 소극적인 애들이 없구나 피부로 느낀 순간이었다. 그래서 나역시 못하지만 그냥 말을 뱉고 봤다. 첫수업이라 소개다 뭐다 하니 순식간에 점심시간이 되었다. 밥먹으러 갈때 자연스럽게 우리반 여자들끼리 모였는데 사우디에서 온 여자 둘은 남편과 점심을 먹는다고해서 4명이서 점심을 먹으러 갔다. 나, 안나, 로라 그리고 치에미, 치에미는 일본인이다. 그후로 한동안 네명이서 붙어다니고 그랬는데 나중에 말이지만 치에미는 정말...이사..ㅇ... 좋은 친구가 아니었기에 두달 후 반이 갈라졌을 때 자연스럽게 셋이서 만나 놀게 되었다. 

둘다 남미애들이라 그런지 마음이 열려있고 파티를 정말 좋아했다. 체력은 또 엄청 좋아서 공부할건 다 하면서 거의 매일 나가서 놀고 마시고 춤추고... 정말 존경스러울 정도였다. 자연스럽게 이둘과 친한 나는파티에서 자주 초대받았고 여러사람들과 어울리며 많은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다. 같이 수없이 놀러다녔지만 프랑스북부를 함께 여행한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 사교적인 안나는 여차저차해서 프랑스인 친구를 사귀게 되었는데, 걔가 노르망디에 별장이 있다고, 각자의 친구들을 초대해서 놀러가자고 해서 안나는 나와 로라를 데려가고, 그 프랑스애는 자기 고등학교 친구를 데리고 와 이렇게 5명이 그친구 차를 타고 별장에 몇일간 놀러갔다. 프랑스는 기차가 굉장히 잘되어있어서 보통 여행한다하면 기차를 타는데, 가격이 결코 싸지 않다. 심지어 종종 국내선 비행기보다 비쌀때도 있다. 그리고 호텔값도 만만치 않은데, 이번 여행은 기차값도 없어 숙박비도 없어 (물론 기름값과 요리재료비는 부담했지만 1/5이라 그런지 정말 적게 들었다. 편도 기차값보다 적게 들었던 것 같다) 그야말로 우리셋은 땡잡았다며 신나게 기쁨의 춤을 췄다. 여행 가기 전날, 어김없이 파티가 있었다. 다음날 몇일간 여행하는데 하루정돈 쉴까 생각이 들었지만 하루하루 알차게 놀기로 굳게 다짐했었기에 그날도 역시 새벽까지 놀고 마셨다. 문제는 다음날 아침 숙취가 심했다. 안나의 프랑스 친구인 팀은 안나와 로라가 사는 레지던스로 픽업하러 온다고 했기 때문에 나는 걔들보다 조금 더 일찍 일어나 친구들의 레지던스로 가야했다. 새벽 6시 20분까지 온다고 하길래 나는 6시에 집에서 출발해야만 했다. 술도 안깨 잠도 안깨, 비몽사몽한 상태에서 대충 짐챙기고 집에서 30분 거리인 레지던스로 출발했다. 속이 계속 안좋았다. 맨날 껄껄대는 나에 익숙해져있던 안나와 로라는 어두운 표정의 내가 적응이 안되는건지 계속 "왜그래" "무슨일이야" 걱정스럽게 물어봤다. 그냥 속이 안좋아서 그런거라고 둘을 안심시켰다. 여튼 팀은 제시간에 머리가 산발인 채로 와서 우리를 태우고 자기 친구인 로 집으로 출발하였다. 로는 내가 사는 뚜르 옆에 작은 마을에 살아서 그쪽으로 이동했다. 로 집에 도착해서 첫인사를 하고 걔는 내 옆자리에 탔다. 로는 나에게 뭐하냐 어디서왔냐 이런 간단한 신상을 물어보는데 불행하게도 (이를 닦았음에도 불구하고) 내 입에서 술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그 속에서부터 올라오는 술냄새 말이다. 설마 착각이겠지. 그래도 최대한 입을 벌리지 않고 자그마하게 대답했는데... 로는 대뜸 "너 어제 파티했어?" 라고 물어봤다. 속으로 깜짝 놀라며 맞다고 했다. 내 옆에 앉은 착한 로라는 놓치지않고 "어디서 술냄새가 나"라고 킥킥대며 말했다. 착각이 아니였다. 나는 로라에게 정말 나냐고 진짜냐고 다그쳤다. 로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지금 이순간도 난다며 나지막히 대답했다. 다같이 마셨는데 왜 나만 이런거지. 정말 억울했다. 차안이 비좁았으므로 그냥 조용히 입다물고 잠을 청했다. 몇시간을 달려서 캉에 도착했다. 성을 둘러보고 도시 구경하고 샌드위치를 사서 잔디밭에서 빙 둘러앉아 먹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해가 지기 시작하자 별장이 있는 위스트르엠으로 출발했다. 캉과 위스트르엠은 그닥 멀지 않았고, 팀의 별장은 생각보다 굉장히 좋았다. 지하에 정원도 딸린 2층집이었다. 내부는 프랑스스러운 노란 꽃잎이 흩날리는 벽지와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많아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앙증맞았다. 



팀은 여자넷에게 집을 구경시켜주고 운전해서 피곤하니 조금 쉬자고 했다. 운전한 것도 아닌데 우리들도 피곤해하며 접이의자를 정원에 끌고와 낮잠을 청했다. 저녁이 되자 바다 근처라 그런지 엄청 추웠다. 6월이라 별로 안추울줄 알아서 쪼리에 반바지 반팔만 챙겨온 내자신이 바보였다. 프랑스 북부에 바다근처인데 뭐 겉옷도 챙겨온게 없으니 정신이 나간거다. 고맙게도 로라가 자기 레깅스랑 집업을 빌려주었다. 반바지 대신 레깅스, 티셔츠 위에 집업을 입었더니 정말 한결 나았다. 바다바람 매서운 바닷가를 산책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슈퍼에 들려서 장을 봤다. 한국요리 재료를 마땅히 구할데가 없어서 그냥 나는 안나가 멕시코요리, 로라가 콜롬비아요리를 할 때 옆에서 도와주기로 했다. 안나는 과카몰리, 로라는 밀가루에 약간에 소금을 넣어 부친 손바닥만한 빈대떡에 토마토와 여러소스를 섞어서 만드는 이름이 기억안나는 콜롬비아 요리를 만들었다. 



그밖에 몇가지 요리를 더해서 나름 괜찮은 만찬을 즐기고 분위기가 업되자 여행에 빠질 수 없는 술게임을 시작했다. 카드를 가지고 하는 게임인데, 숫자와 모양을 조합해서 나름 규칙을 만들고 규칙을 틀리거나 지키지 못하면 카드를 뽑은 사람이 벌칙자가 몇잔을 마실지 정하는 일종의 왕게임이었다. 서로 복수에 복수를 치열하게 하다보니 어느새 새벽 3시. 씻지도 못하고 게임하느라 다들 취하고 녹초가 되어있었다. 결국 로라와 나는 들어가서 씻고 그 후 차례씩 방안에 들어가 잤다. 로라와 나는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는데 밖에 거실에서 안나와 팀과 로는 지치지도 않는지 여전히 대화꽃을 피우고 있었다. 굉장한 체력에 감탄하며 나는 문을 닫고 잠을 청했다. 로라는 벌써 코를 골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모두 늦잠을 잤다. 세수를 하고 팀이 아침에 먹을 바게뜨와 크로와상을 사온다고 해서 안나와 나는 팀한테 같이 가자고 하고 따라갔다. 주말 오전이라 그런지 빵집에는 줄이 길게 서있었다. 빵집 옆에는 할아버지가 악기(?)를 연주하고 있었다. 



마침내 차례가 되어 빵을 충분히 사고 돌아오는 길에 주말 장이 섰길래 장 한바퀴 돌고 집으로 돌아왔다. 고맙게도 로라와 로가 이미 테이블 세팅을 끝내놓았다. 프랑스 빵집은 제빵사가 매일 아침에 빵을 만들기 때문에 정말 맛있다. 커피와 함께 먹는 크로와상은 꿀맛이었다.

늦은 오전, 다시 바닷가로 향했다. 전날에는 그저 바다를 바라보기만 했는데 전날보다 더 추웠음에도 불구하고 바닷물에 발을 담구기도 하고 모래에 글씨를 쓰고 사진도 찍으며 모래사장을 뛰어다녔다. 발을 말리려고 근처를 맨발로 걷다가, 팀이 조금만 더 걸으면 단체자전거(?) 대여하는 곳이 있는데, 2시간 정도면 위스트르엠 구석구석을 구경할 수 있다고 해서 그 길로 바로 자전거를 대여해서 바닷가부터 마을안쪽까지 샅샅히 돌아다녔다. 4명은 자전거 페달을 밟고 한명은 맨앞 페달없는 자리에서 그냥 앉아서 어디가자 이렇게 말만 하면 됐는데, 처음에는 모두 그자리에 안가고 싶어하다가 나중에는 힘들어서 모두 그자리에 가고싶어했다. 나는 맨처음 그자리에 앉았기 때문에 끝에 가선 다리근육이 파르르 떨렸다. 여차저차 그 날도 재밌게 놀고 마지막 날은 학구적인 안나의 강력한 주장으로 바이유에 가서 태피스트리를 봤다. 그 후 점심을 먹고 뚜르로 다시 출발하였다. 몇달 전 여행인데도 정말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만큼 즐거운 여행이었다는 반증이겠지만.

안나는 7월에 멕시코로 돌아가야 했다. 로라는 프랑스에서 디자인석사를 할거라 도시는 옮겨도 프랑스에 있겠지만 안나는 멕시코로 아예 돌아가는거라서 정말 슬펐다. 어울리는 친구들은 많았지만 정말 '친구'라고 느낀 애들은 몇명 없었고 그중에서도 안나는 특별한 친구였기에 더욱 그랬다. 우리 삼총사가 약속한게 있는데, 바로 서로의 결혼식에 들러리로 꼭 참석하는 것이다. 일단 각자의 나라로 초대받으면 당연히 숙식무료에 가이드까지 하는거지만 비싼 비행기표는 각자 내기로 했다. 우리는 비행기표 모을 통장을 따로 만들어야 한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어쨌거나 안나는 멕시코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파리에 한나절 머물러야 했다. 나는 안나와 파리로 가서 함께 여행하다가 마지막 날 공항으로 가서 배웅하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파리가 파리인지라 호텔값도 비싸고 짧은 시간 동안만 함께 할 수 있지만, 솔직히 그건 내겐 중요하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더 친구와 함께 있는게 더 가치있으니 말이다. 

안나가 뚜르를 떠나는 당일, 팀은 자동차로 기차역까지 데려다주고 로라는 배웅을 나왔다. 기차역에서 슬픈 작별 후 안나와 나는 파리로 향했다. 파리 지하철은 우리나라 지하철에 비해서 정말 낡고 지저분한데, 더 심각한건 엘레베이터가 없다. 안나는 큰 여행가방을, 나는 내 배낭과 안나의 작은 여행가방을 옮기며 다녔는데, 몇번 갈아타고 오르락 내리락 하니 기절할 것 같았다. 안나의 얼굴은 탈진 직전이었다. 우리둘은 헉헉대며 마침내 역에서 엄청 먼 호텔에 도착했다. 나름 괜찮은 조건인데 파격세일을 하길래 신기하다 했는데 세상엔 이상한게 없다고 위치가 정말 헬이었다. 둘다 방에 도착해 침대에 엎어져서 좀 쉰 후, 파리 중심지로 이동했다. 간단히 샌드위치로 허기를 때우고 루브르 박물관으로 향했다. 시간이 별로 없어서 이집트 전시실을 본 후 폐장시간에 맞춰 박물관에서 나왔다. 주위를 돌아다니다가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고, 파리에서의 마지막 밤이기에 에펠탑으로 향했다. 그 전에 슈퍼에 들려 유리잔 두개와 화이트와인을 샀다. 눈앞엔 에펠탑이 반짝거리고 친한 친구와 와인한잔하며 수다를 떠니 이보다 좋을 순 없었다. 안나가 함께 와줘서 정말 고맙다고, 파리의 마지막 밤을 좋아하는 친구와 같이 여행하고 이렇게 보내는게 너무 좋고, 네가 정말 많이 그리울거라고, 프랑스를 떠나고 싶지 않다고 눈물을 글썽거리는데, 나도 눈물이 핑 돌았다. 우리는 좀더 에펠탑을 바라보고 싶었지만 다음날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 아침 비행기를 타야했기에 호텔로 돌아왔다.

결국 안나는 떠나고, 로라는 낭뜨에 있는 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뚜르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마을에서 베이비시터를 했기 때문에 그 기간동안 로라를 만날 수 없었다. 사실 안나와 로라 뿐만 아니라 7월에는 많은 친구들이 여름방학을 자기나라에서 보내기 위해 떠났기 때문에 정말 마음이 휑했다. 다행히도 나는 그렇게 사교적이지 않은데도 운이 좋은건지 새로운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고, 그렇게 또 잘지내게 되었지만 안나와 로라, 이 둘은 다른 친구들보다 훨씬 더 특별한 친구들인것은 변함없을 것이다.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로라는 낭뜨에 놀러와 자기집에서 머무르라고 해서 보름동안의 휴가(?) 때를 틈타 낭뜨로 놀러가 함께 여행했다. 한국행 비행기를 타러 파리로 갈때 역에 배웅 나오기도 한 고마운 로라. 한국에 와서도 세상 좋아져서 페이스북이니 왓츠앱이니 둘과 자주 연락하지만, 모두가 좋아하던 공원 카페에 셋이 모여 몇시간이고 수다떨던 그때가 정말로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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